사경순례수행일기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상원사적멸보궁 답사기

운영자 | 2015.08.28 15:58 | 조회 406

잃어버린 나를 찾아 - 박자행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주부는 하루가 시작되면 오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일상인의 대표적 사람이다. 가정 꾸리기와 남편 뒷바라지,

자식 양육에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고 이런 변화 없는 순환적 삶에 마음마저

빼앗기기 마련이다. 나는 누구인가? 마음이 없는 나는 진정 '나'인가?

어쩌다 한가한 시간이 나면 자신과 일생을 돌아보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골몰하기도 한다.

 

내가 다니는 은적사에서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사경 답사를 떠났다.

우선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에 마음이 상쾌하고 가벼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작은 오솔길에 들어선다는 것에 엄숙과 경건함이

마음을 채웠다.

 

동녘 하늘에 여명이 번지는 아침 6시 40분에 출발한 버스는 도심을 지나 자연을 가르는

도로를 달리고, 묶어 두었던 밧줄이 풀린 마음들은 벌써 들녘과 숲을 지나 하늘을 날고 있었다.

11시가 지날 즈음 월정사 옆길의 비포장 도로 8Km를 달리기 시작했다.

 

입구부터 오랜 세월을 머금은 수목들은 숲 향기를 뿜으며 군인들이 도열하듯 늘어서서

우리를 말없이 반겼다.

버스에서 내려 오대산 상원사 큰 표석을 지나다가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란 푯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스쳐갔다.

 

번뇌, 이것을 만든 것도 나요 이것을 놓는 것도 내가 아닌가?

가지려고 하는 것이 번뇌요 버리는 것이 번뇌를 놓는 것이 아닌가?  '일체유심조'

오대산 중대암에서 점심을 먹고 정성들여 사경을 한 후 최대덕행 보살님과 함께 염주 팔찌를 사서 끼고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모셔 놓은 곳인 제1적멸보궁에 이르렀다.

 

올라왔던 긴 계단을 지겨운 마음으로 내려와 법당 마당에 이르니 외로이 선 불탑이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하얀 피부 빛깔로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더 한 흰빛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태종이 중대 사자암을 중건하고 권근에게 "먼저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후세에게까지 그 이로움이

미치게 하여 남과 내가 고르게 불은에 젖게 하라"고 한 말을 뇌리에 되새기며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월정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왕문에 들어서니 사천왕이 큰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는가?

무심코 한 말이 남의 가슴에 상처를 안겨 준 일은 없는가?

불자로서 보리심을 행하고 있는가?

이어지는 자성의 물음들이 나의 정신을 휘저어 놓는다.

나무관세음보살!

법당에 이르는 훤한 마당에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팔각 구층 석탑이 서 있고 그 앞에 탑을 마주하여

바라보는 석조 보살좌상이 있었다.

 

15.2m 높이의 이 팔각 구층 석탑은 삼국시대의 사각 평면에서 벗어난 고려시대의 다층 석탑으로

9층 탑신과 옥개석은 날씬하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으며, 입술 양끝처럼 살짝 들어 올린 옥개석의

모서리와 탑신의 감실, 팔각의 다양한 변화는 당시 화려한 불교문화와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상륜부의 장식은 고도로 발전한 고려의 공예기법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창에는 어느 듯 어둠이 묻어오고 빗줄기가 이슬처럼 부셔진다.

어둠의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오늘 빛나는 하루를 되새겨 본다.

잃어버린 나를 찾고자하는 내 기원의 짧은 여로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화신인 문수보살을 만났다.

그것은 바로 지혜의 완성과 만남이다. 아무런 분별심, 차별의식, 우열관념 등이 없는 고요하고도 밝은

마음으로 보리심을 내는 것이다.

바쁘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일상의 때를 씻고 오늘 밤은 꿈에서나마 부처님을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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