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부처님은 누구인가

관리자 | 2006.06.10 02:31 | 조회 956
부처님은 누구인가
‘초월적 신’ 아니라 ‘진리 깨달은 인간’
유럽에서 과학적인 불교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세기에, 불교연구자들은 고타마 붓다가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쪽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에밀 세나르, 헨드리크 케른, 오토 프랑케를 비롯한 불교학 연구를 선도했던 많은 학자들이 고타마 붓다를 문학적으로 의인화된 신화적 인물로 간주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뿌리깊은 기독교 백인 우월주의도 그 한 원인이 라는 것이 폴커 초츠의 주장이다. 유럽인들은 유럽중심주의 때문에 동양인 가운데 붓다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믿으려 들지 않았고, 인도에서 서양의 전통보다 더 오래된 세계종교가 출발했다는 사실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르만 올덴베르크의 〈붓다〉가 출간되면서 유럽의 학계에서는 마침내 고타마 붓다가 역사적 실존 인물로 여겨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의식해서인지 말레이시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리 담마난다 스님은 고타마 붓다가 2500여년 전 북인도에서 생존했고 불교라는 종교를 창시한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들어 분명히 하고 있다.

첫째, 부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부처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돌비명, 돌기둥, 그리고 탑 등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 그 시대의 설화에 언급된 건물의 유적지나 장소가 인도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셋째, 부처님이 창시한 성스러운 교단인 불교 승가가 스리랑카, 미얀마, 티벳,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 현재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부처님이 입멸한 후 수 차례에 걸친 결집(結集)을 통해, 부처님이 45년간 설한 가르침 등을 집대성한 삼장(Tripitaka)이 전해져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섯째, 부처님이 입멸한 후 다비하여 얻은 사리가 수많은 탑 속에 보관되어 전해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여섯째, 매우 뛰어나고 신빙성이 있는 고대 역사책인 〈대사(Mahavamsa)〉에 불교사에서 언급된 여러 왕들과 아쇼카 왕의 전기 및 부처님의 전기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서양서는 한때 전능한 신으로 ‘오해’

고타마는 불교 창시한 ‘역사적 존재’




이러한 이유로 이제 서구에서도 고타마 붓다를 신화적 존재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부처님이 역사적 존재였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부처님을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문제가 남는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절에 가 보지 않겠느냐”고 하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부처님을 신 또는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부처님을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한 가지는 종교란 으레 신을 믿는다는 선입견이고, 다른 한 가지는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초인적이고도 기적적인 이해이다.

불교는 신 또는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구원을 설하는 매우 특별한 종교다. 신을 인정하지 않는 불교의 창시자가 신일 수는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라 말 그대로 ‘깨달은 자’ ‘깨달은 사람’ 이라는 뜻이다.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깨달은, 다시 말해서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성취한 인간이다.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남김없이 다 발휘한 위대한 인간, 지혜와 자비로 충만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바로 부처님인 것이다. 또한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날 때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거나,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서 “천상천하에 오직 내가 가장 존귀하나니, 삼계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편안케 하리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여, 부처님을 인간이 아닌 신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불소행찬〉에 따르면 인도의 우유왕은 넓적다리에서 태어나고, 계유왕은 손에서, 만다왕은 이마에서, 가차왕은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위인들의 전기를 쓸 때 그들의 탄생부터가 보통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전기문학적 기법에 연유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위의 탄생게도 싯다르타 태자가 직접 외쳤다기보다는, 부처님을 존경하고 숭앙하며 부처님의 인생 목표를 한 마디로 압축하고자 했던 제자들의 마음과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 및 지혜와 자비의 능력을, 우리들 자신을 잣대로 마음대로 재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부처님은 분명 인간이었다. 열반의 땅 쿠시나가라를 향해 가던 중, 아난에게 “아난아, 내 옷을 네 겹으로 접어 바닥에 깔아라. 피곤해서 잠시 쉬어가야겠구나.”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은 인간 부처님의 체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부처님은 결코 신이나 절대자나 초월자가 아니라, 인간, 깨달은 인간이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지만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스스로 깨달아 부처님이 되라고 그토록 타이르셨던 것이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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