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백팔배를 왜 하는가(1)

관리자 | 2006.08.07 09:26 | 조회 1029
백팔배를 왜 하는가? 1) 왜 절을 하라고 하는가? 잠자기 전의 기도 외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훌륭한 기도 법으로는 절을 하는 방법이 있다. 왜 우리 불교에서는 절할 것을 권하는 것일까? 첫째는 절을 통하여 아상(我相)을 꺾고 복밭(福田)을 이루기 위함이다. 인간의 모든 그릇된 업은 아상에서 비롯된다. '나다', '내가 제일이다.'하는 교만심을 일으켜 제 잘난 맛으로 살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비롯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면서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만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한 나라 전체를 통치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이러한 생각에 빠져 출마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대통령 감이 될 수 없다. 나만이 대통령 감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이 나라가 바로 서리!" 이렇게 망자 존대(妄自尊大)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면 그 나라의 꼴은 어떻게 되겠는가? 실로 우리 주위에는 자신을 높이고 '제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먼저 '나'의 육체를 관찰해보라. 이 몸뚱이는 물질에 불과하다. 물질이 차츰 낡아서 부서지듯이, 몸뚱이가 아무리 잘생기고 튼튼하더라도 별 수가 없는 것이다.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도 한줌 흙으로 바뀌었고, 그 잘났던 김일성도 마침내 죽어 염라대왕 앞으로 가 버렸다. 오래되면 물질은 사라지기 마련인 것이다. '나'의 정신 또한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변천하는 생각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한 생각이 일어나서는 잠시 머물다가 달라지고 사라져가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흐름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된 '나'! 그 '나'는 끊임없이 변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무상하고 허망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 무상한 '나'를 대단한 것인 양 내세우고 있으면 고통만 따를 뿐, 멋있고 자유로운 삶이나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말 잘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상부터 없애야 한다. 아상을 없애는 공부! 그것이 바로 절이다. "저의 가장 높은 머리를 불보살님의 가장 낮은 발아래 바치고 절하옵니다." "저의 가장 귀중한 목숨을 바쳐 절하옵니다(歸命頂禮)." 만약 '나'를 높이는 아상을 버리고 절을 하여 하심(下心)을 할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낼 수 있게 되고, 참된 봉사를 하면 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며,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도 편안해질 수가 있다. 이렇게 하여 일체 사람을 편안한 세계로 인도하면 대복전(大福田), 곧 큰 복밭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업장소멸(業障消滅), 곧 절을 많이 하여 속에 쌓은 업을 비워 내고자 함이다. 옛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몸은 돌아다니는 변소요, 구정 물통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실로 그러하다. 아무리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화장을 했다고 해도 알고 보면 추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 우리의 몸뚱아리이다. 가죽피대 속에는 피와 고름과 때와 똥오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뿐인가? 제 마음에 맞으면 탐욕심을 내고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성을 내며, 탐하고 성내다 보니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여 시기, 질투, 아만, 방일 등 수많은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나아가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까지 곁들이고 있으니.... 이러다 보니 우리의 마음 그릇은 완전히 구정 물통이 되고 말았다. 본래 깨끗하고 천진했던 항아리에 쓰레기 찌꺼기도 담고 쉰 밥도 담고 고기 뼈다귀도 담고....   온갖 찌꺼기들을 자꾸 담다 보니 구정 물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북적북적 속이 끓는 탁하디 탁한 구정 물통! 흉칙한 망상이 항상 출렁이는 구정 물통! 그 구정 물통이 꽉 차서 콸콸 넘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마음 그릇 구정 물통을 맑혀야 한다. 그러나 넘치는 구정 물통에 맑은 물 한 사발을 붓는다 하여도 별 소용이 없다. 맑히려면 구정 물통을 넘어뜨려 쏟아 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배가 크고 모가지가 작아 넘어뜨려 쏟아 봐도 속의 것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제 별 도리가 없다. 오직 한 바가지 맑은 물을 붓고 흔들면서 냅다 쏟고, 한 바가지 물을 붓고 냅다 쏟고......  오로지 거듭거듭 반복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와 같은 반복 작업이 절이다.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을 간절히 찾는 것은 맑은 물을 붓는 것이고, 절하며 엎어지는 것은 구정 물통을 흔들면서 찌꺼기는 쏟아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몇 번의 절로써는 속의 묵은 찌꺼기를 다 비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듭거듭 절할 것을 옛 스님들은 강조하셨다. 적어도 108배, 1천배, 3천배, 5천배, 1만배의 절을 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렇게 거듭거듭 절하다 보면 업장이 소멸될 뿐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그릇이 청정해지고 내 몸뚱이 그릇이 청정해지면서 몽중가피(夢中加被)도 나타나고 현증가피(顯證加被)도 나타나고 명훈가피(冥熏加被)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곧, '중생심의 물이 청정해지면 보살의 달 그림자가 거기에 나타난다(衆生心水淨 菩薩月影顯).'가 되는 것이다. 우리를 맑히고 우리를 큰 복밭으로 만들어 주는 절. 이제 우리가 성의만 있으면 평소 능히 할 수 있는 108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백팔배를 왜 하는가 (2)에 계속.....)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