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오계(1)- 살생하지 말아라

관리자 | 2006.09.01 07:16 | 조회 1120

 

             오계(1)-살생하지 말아라



불살생계는, 말 그대로 살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릇 모든 생명은 불성(佛性)으로 충만하여 있기에 어느 한 생명도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율장(律藏)에서는, "위로는 부처님, 성인, 스님, 부모님 등의 인간을 비롯하여 날아다니고 기어다니는 보잘것없는 곤충들까지 생명 있는 것을 내 손으로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이거나, 죽이는 것을 보고 좋아하지 말라." 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작은 곤충, 미물이라도 그 하나 하나의 생명에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존엄성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로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체 모든 생명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중생을 죽인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내가 나 자신을 죽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대지도론>에서는 살생에 뒤따르는 열 가지 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에 항상 독을 품어서 세세 생생토록 끊어지지 않음이요.
둘째는, 중생이 증오해서 눈으로 보기를 좋아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항상 나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일을 생각함이요.
넷째는, 중생이 그를 두려워해서 호랑이나 뱀을 보는 것 같이 하고,
다섯째는, 잠을 잠에 마음이 두렵고, 깨어나면 또한 편안하지 못함이요,
여섯째는, 항상 악몽에 시달리고 질병이 많음이요,
일곱째는, 명을 마칠 때에 미친 듯 두려워하며 나쁘게 죽음을 당할 것이요,
여덟째는, 단명(短命) 업의 인연을 심음이요,
아홉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마칠 때 지옥에 떨어짐이요,
열번째는, 만약 사람이 되어 태어나더라도 항상 반드시 단명할 것이라.

이와 같이, 살생의 과보는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입니다. 또한,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남을 죽이면, 그의 손에 언젠가는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 바로 인과응보의 철저한 법칙이 아닙니까?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편 보겠습니다. '양 무제'는 평소 '합두 대사'를 공경하고 믿었다. 어느 날, 무제는 관리를 보내어 스님을 뵙기를 청하고 나서, 신하와 함께 바둑을 두었다. 바둑을 두던 중 바둑 한 점을 죽이려고 큰 소리로 "죽여라" 하고 소리치니, 모시고 왔던 관리가 '합두 대사'를 베어 버렸다.

무제가 바둑을 두고 나서 스님을 찾으니 관리가 말하기를, "조금 전에 폐하께서 신으로 하여금 '죽여라' 하여 베었나이다." 하였다. 무제가 슬퍼하며 기절할 지경이 되어서 묻되, "스님이 죽음에 임하여 무슨 말을 남기시던고?" 하니, 관리가 말하기를, "스님이 이르시되, '내가 전생에 사미로 있을 때, 가래로 땅을 파다가 잘못하여 지렁이 한 마리를 해쳤더니, 그 때 그 지렁이가 지금의 양 무제'라 하더이다." 하였다.

이 과보가 진실로 마땅한지라. 참으로 설사 백천억 겁이 지나더라도 지은 바 업은 없어지지 아니해서 인연이 만날 때 과보를 다시 스스로 받음이로다. 반드시 알라.
십계(十界)가 동일한 심체(心體)라. 다만, 심체가 미(迷)하면 날고 기는 곤충이 되는 것이고, 깨달으면 모든 부처님과 성인이 됨일세. 그런 까닭으로 여래는 대자(大慈)하사 일체를 함께 구제하시니라.

이처럼 살생의 과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엄격한 법입니다. 나도 모르게 저지른 살생이라도 그 결과는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죽임을 당하는 엄밀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남을 해치는 것이 그대로 나를 헤치는 것이며, 남을 죽임이 그대로 나를 죽이는 것이니 어찌 살생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살생업의 결과 생을 마치게되면 마땅히 지옥의 보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지옥의 모습에 대하여 경전에서는 다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장난 삼아 다른 이의 생명을 죽이면 슬프게 울부짖으면서 지옥에 들어감이라.

더러운 것과 끓는 구리 물에 넣었다 뺐다 하며 난도질을 하고, 불 속에 들어가며, 찢기고, 부서지고, 매 맞는 독을 얻어서, 억만 년의 고통, 수 없이 마음에 쓰리고 아파, 차마 기록하지 못함이로다.'

<현우경> 이렇게 지옥의 괴로움을 받게 되지만, 이 괴로움이 끝나더라도 그 과보는 이어지게 됩니다.
살생을 하면, 지옥, 아귀, 축생, 수라의 사취(四趣)에 들어가서 삼도의 고통을 받게 되며, 이를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목숨이 짧거나, 근심과 질병이 많으며, 질병으로써 고난을 당함이요, 수명이 짧아질 것이니, 만약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살생하는 마음을 가벼이 여기겠는가?
<습보경>


이와 같이, 살생의 과보는 너무나도 험난합니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시주의 은덕을 입어 살면서 가난한 이를 구제하여 편안히 살게 해주며, 죽이는 것을 보면 자비한 마음을 내라.' 하고 있습니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죽이지 말 것이며,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될 경우 자비한 마음을 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흔히 여름철에 모기나 개미, 파리들이 수없이 들끓을 때, 우리들은 그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쉽게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미물을 죽이는 것 또한 불살생계를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자칫 잘못하여 죽이게 되더라도 그저 아무런 거리낌없이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그 생명을 위해 간절한 마음, 자비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하찮은 미물로 태어나 고생하지 말고,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 떳떳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간절히 발원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내는 자비의 마음 한 조각은, 어떻게 생각하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동체대비심에서 나오는 간절한 마음 하나는 이 법계를 울리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처럼, 하찮은 미물이라도 그들을 위해 항상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길을 걷다보면, 혹은 차를 타고 시골길을 가다 보면 거리에 죽어있는 짐승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 때라도 그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연습할 일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염불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행한 한번의 자비행은 자신의 커다란 업장을 제거해 주는 커다란 복이 되기도 합니다.


<잡보장경>에 이르되, 옛날 한 나한이 어린 사미를 시자(侍者)로 두었는데,
사미가 7 일 후에 목숨이 다하여 죽을 것을 알고, 세속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사미가 집으로 가던 중에 많은 개미들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모두 죽을 것 같아 자비심을 내어 옷을 벗어 흙을 담아 물을 막아서 개미를 건져내어 높고 마른 곳에 놓아두었다.

7 일이 지난 후에 다시 스승의 처소로 돌아가니 스승이 그를 심히 이상하게 여기고 선정에 들어 천안으로써 관하여 살피니, 사미가 다른 복으로 다시 살게 된 것이 아니라 개미를 구해 준 인연으로 7 일에 죽지 않고 수명이 연장되었음을 알았다.


<장부논개>에 이르되, 자비한 마음으로 한 사람에게 보시하면 공덕이 대지와 같고, 자기를 위하여 일체에게 보시하면 과보를 얻음이 겨자씨와 같음이로다. 액난을 만난 어려운 한 사람을 구하면 다른 일체에게 보시한 것보다 수승하니 많은 별들이 비록 광명이 있으나 하나의 달이 밝은 것만 같지 못함과 같느니라.               
           [자료출처 : 목탁소리]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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