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식/교리문답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山寺의 佛畵상식

관리자 | 2007.01.13 09:17 | 조회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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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의 佛畵상식


[회화] 지장도(地藏圖)

지장도(地藏圖)
고려 14세기, 비단彩色104.0×55.3cm, 보물 784호

지장보살은 산스크리트어 Ksitigarbhr에서 나온 말로 대지의 덕을 의미한다. 인도 아리안족의 신화 가운데 프리히비(Prthivi)여신이 불교화하여 들어 온 부처이기도 하다.지장신앙은 지장십륜경, 지장본원경, 점찰선악업보경등의 경전에 근거 하고 있으며 지장신앙의 특징은 사후세계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에 구제에 기반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 입멸 후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무불세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본원을 세운 보살로 삿발하고 가사를 걸친 비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석장과 보주를 든 입상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며 고려 불화에서는 특히 머리에 두건을 쓴 피모지장보살상이 많은데 이는 투르판(Turfan)지방과 돈황에서도 발견된다.

좌측의 불화와 같은 지장시왕도에는 협시한 도명존자가 반드시 표현되는데 도명화상은 당나라 때 명부를 직접 보고 왔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또 여기에서 시왕은 중국 태산신앙을 불교적으로 윤색한 판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중국 당말 송초에 만들어진 위경의 일종인 <예수시왕생칠경>에서 비롯 된다. 여기나오는 인물들은 좌우 협시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사천왕, 범천, 제석천등이며 일반적으로 표현되어 지는 명부시왕, 판관, 사자,금모사자는 그려지지 않은 그림이다. 도상적으로 볼 때 권속들의 위치가 지장의 가슴 높이 까지 올라와 있는데 시기가 앞 설수록 무릅 아래쪽에 표현되며 조선시대에 오면 완전히 위쪽까지 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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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수월관음보살도(水月觀音菩薩圖)

수월관음보살도(水月觀音菩薩圖)
고려 14세기, 비단彩色 119.2×59.8cm, 보물 926호

산스크리트어 Avalokitesvara를 한역한 관음보살은 광세음, 관세음, 관세자재 ,관세음자재로 불리우며 시무외자 또는 원통대사로도 불리워 진다. 관음신앙에서는 부처의 자비사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현실적인 소망을 이루어 주는 보살로 잘 알려져 있다. 관음신앙은 화엄경,아미타경,법화경,능엄경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거처하는 곳인 보다락가산은 화엄경 입법품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에 올려 놓은 그림을 비롯한 관음보살도는 고려불화중 가장 아름답다 평가되고 있다. 머리부분을 자세히 살펴 보면 화불이 있는 보관을 볼 수 있고 몸에는 백색의 베일(사라)과 각종의 문양을 수 놓은 천의를 입고 있다.이러한 외모는 관무량수경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관음보살도의 표현 가운데 양류관음이라 하여 한 손에 버드나무 가지가 든 정병을 들고 있는 모습은 밀교경전인 <청관음경>에서 찾아 볼 수 있고 쌍죽을 묘사한 데에는 의상대사의 낙산사 창건설화에서 관음보살이 의상에게 "산꼭대기에 한 쌍의 대가 솟아 있는 곳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하겠다."하여 짓게 되었다는 설화에 기원한 것인데 고려 관음보살도만의 독특함이라 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왼쪽 아래부분엔 선재동자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화엄경 입법품계에서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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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 )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 )
비단彩色 110.7×51.0cm, 국보 218호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어인 아미타브하(Amitabha), 아미타유스(Amitayus)를 어원으로 하며 번역하면 무량수불, 무량광불로 부른다. 대승불교 보살사상의 중심에있는 부처로서 인도 서북부(카시미르, 네팔)에서 발생한 신앙형태로 보여 진다. 우리나라에서 아미타 신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권력층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 까지 뿌리 깊고 폭도 넓다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는 화엄종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음에도 무량수전(=극락전)을 짓고 아미타불을 모신 점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이유로 들 수 있는 점은 아미타불이 대표적인 구원불이고 그 신앙이 인도적으로 중생의 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느껴 지는 느낌이 이를 잘 보여 준다.내용적인 면에서 관찰해 보면 관무량수경에선 좌우 협시보살로 관음과 세지보살이 모셔지지만 이 그림에선 관음과 지장이 협시하고 있다. 그 중 관음보살은 왕생인을 향해 몸을 숙인 채 연화대를 두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또한 아미타불은 계주에서 나오는 한 줄기 빛으로 왕생인을 비추고 있다. 자비를 중심적 이념으로 두는아미타,관음,지장이 이제 막 임종한 사람을 받아 드리고 있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고려불화 중에서 아미타불을 소재로 그린 불화들 -아미타본존도, 아미타삼존도, 아미타팔대보살도, 아미타정토변상,관무량수경변상에선 대체적으로 장중함(왕생인과 부처의 스케일대비만 하더라도)과 표정의 우울함이 느껴진다.이 그림에서도 그러한 것들이 잘 나타나 있으며 아미타불의 손모습(수인)은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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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산신탱화(山神幀畵)

산신탱화(山神幀畵)

글·최성규 / 사단법인 한국전통불교회 불화연구소 소장

산신은 가람의 외호신(外護神)인 까닭에 사찰의 뒷쪽 외각에 산신각(山神閣, 또는 山靈閣)을 짓고 그 안에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상이나 산신탱화를 봉안한다. 산신탱화는 독성탱화와 도상면에서 일견 유사한 면도 있으나 엄격한 이미지의 독성과는 달리 산신은 인자한 미소에 복스러운 모습으로 호랑이와 함께 나타나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산신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오해가 적지 않다. 즉 산신이 원래는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속신이었으나 불교가 재래 신앙을 수용할 때 호법신중의 하나로 삼아 불교를 보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부여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견해가 나름대로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는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일컬어지는 산신에 대한 개념의 근거는 화엄법회에 동참했던 39위의 화엄신중 가운데 제 33위에 엄연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신을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앙만으로 보는 견해는 재고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석문의범』의 산신청(山神請) "가영(歌詠)"에서는 산신은 "옛날 옛적 영취산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으시고, 강산을 위진하며 중생을 제도하고 푸른하늘 청산에 사시며, 구름을 타고 학처럼 걸림없이 날아 다니시는 분(靈山昔日如來囑 威鎭江山度衆生 萬里白雲靑障裸 雲車鶴駕任閑情) 이라고 찬탄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전 국토의 2/3가 산이기에 선조들에게 있어서 산은 곧 생활의 터전이었다. 산을 의지하여 살았고 또 죽어서는 그 곳에 묻혀야 했던 사람들이 산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산악 숭배가 전국의 곳곳에 산신당(山神堂)을 짓고 숭배한 것은 사실이겠으나 그런 이유만으로 불교의 수호신으로 수용된 것이 아니라, 주지하였다시피 화엄경 등의 교의적 근거가 있었기에 소재강복(消災降福: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내리는)의 외호신으로 무리없이 습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산신은 조각상보다 탱화로 도상화하여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19세기 말에 조성된 문경 김용사(金龍寺)의 산신탱화를 보며 산신의 위의를 교의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산수와 노송을 배경으로 가운데 큼직이 앉아서 인자한 미소와 눈빛을 보이는 산신(①)은 왼손으로는 흰수염을 만지며 오른손에는 백우선(白牛扇)을 잡고 있다. 산신청 "거목(擧目)"에, "만 가지 덕을 갖추고 뛰어난 성품을 한가롭게 가지고 계시며(萬德高勝性皆閑寂山王大神)", "사찰이 자리한 산에 항상 계실(比山局內恒住大聖山王大神)"뿐만 아니라 "시방법계에서 지극한 영험을 나타내시는 분(十方 法界至靈至聖山王大神)"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덕성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듯 가서 의지 하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넉넉한 산신의 오른쪽에 있는 호랑이(②)는 무섭고 위엄스럽기보다는 애교스러운 자태로 표현되어 친근감을 주고 있다. 산신의 왼쪽에는 과일을 바치는 동녀(③)와 그 조금 뒤의 동자(④)는 자손이 끊이지 않음을 기원하는 의미의 호리병과 불로의 영지가 매달린 지팡이를 들고 서 있다.

동녀가 들고 있는 과일 중 석류는 다자(多子)를 뜻한다. 동자와 동녀가 올리는 이러한 공양과 기원은 곧 신행자가 산신에게 올리는 기원의 시각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 같은 불화의 많은 도상들은 그 자체의 의미와 함께 신행자의 심중소구(心中所求)를 담은 복합적, 동시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신의 뒤로는 힘찬 소나무의 뻗은 가지와 잎이 화면의 상단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청록산수 기법으로 표현된 화려한 산수에는 부귀화(富貴花)인 모란꽃(⑤)이 피어 있고 새들이 노닐고 있으며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항상하기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서운(瑞雲)과 함께 붉은 해(⑥)가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의 산신탱화가 전국의 사찰에 모셔져 있다는 것은 토속신으로서의 소박한 수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교적으로도 교리적 근거가 분명하며, 나아가 각종 공해로 강산의 폐해가 심한 요즈음 산신신앙의 재조명을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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