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전비유설화─부처님이 귀향한 이유

관리자 | 2007.01.15 06:42 | 조회 1133

           

          부처님이 귀향한 이유


부처님이 마가다의 나이란자라 강가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고향인 카필라바스투로 가서 석가족을 교화하고자 했다. 부처님은 존자 우다이를 먼저 고향으로 보내 부친인 슛도다나 왕에게 고향방문 소식을 전하게 했다.
슛도다나 왕은 부처님이 고향방문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길을 닦고 청소를 하며 부처님 일행을 맞을 준비를 했다. 부처님은 이레 뒤에 제자를 거느리고 금의환향했다.

슛도다니 왕은 성 밖 교외까지 나와 부처님을 영접했다. 부처님은 오랜 만에 만나는 부왕에게 축복의 말을 했다. “대왕께서는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 교화하시되 삿된 법은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대왕께서 이렇게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교화한다면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천상에 태어날 것입니다.”

정진은 대신해 줄 수 없고 공덕도 대신 지을 수 없어 먼저 불교를 만난 사람은 가족부터 교화해야 하는 것 부처님은 부왕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부왕은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손수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공양했다. 부처님은 부왕을 위해 설법했다. ‘누구나 보시와 지계를 실천하면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차제설법이었다. 왕은 설법을 듣고 마음의 눈이 열렸다.

설법을 마친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외에 있는 살로동산으로 돌아가 머물렀다. 다음날다시 성에 들어와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원인(集)과 괴로움이 사라짐(滅)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방법(道)’에 대해 설법했다. 설법을 들은 사람들은 법안(法眼)이 열렸다. 부처님이 고향에 머무는 동안 많은 석가족들이 출가했다.
그 중에는 나중에 부처님을 배반한 데바닷다, 오랫동안 부처님을 시봉한 아난다, 열심히 정진하다가 눈이 먼 아니룻다, 세속의 인연을 그리워하다가 꾸지람을 들은 난타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출가를 하자 슛도다나 왕은 형제가 있으면 한사람은 남기고 출가하도록 했다. 〈증일아함경 15권 고당품(高幢品) 제5경


어떤 큰스님에게 누님 한분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동생이 큰스님이시니 극락왕생은 떼놓은당상’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누님은 수행을 하지 않았다.
그 누님이 어느 날 스님을 찾아왔다. 때는 마침 공양 시간이었는데 스님은 식사를 했느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누님이 섭섭해 하자 스님은 ‘동생이 밥을 먹으니 누님도 배가 부를 것’이라고 했다. 누님이 ‘말도 안 된다’고 하자 ‘그럼 내가 깨달은 것이 누님과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누님은 그때야 크게 깨우쳤다고 한다.

부처님 가르침은 바르게 믿고 따르기만 하면 반드시 괴로움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철칙이 있다. 수행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고, 선업을 지어 공덕을 쌓는 것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을 아들로 둔 부모라도 스스로 닦지 않고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불자 중에 먼저 불교를 만난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가족부터 교화해야 한다. 부처님의 고향방문도 가족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 위한 것이었다. 불자들 중에는 ‘종교는 개인적인 것이므로 강요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좀 더 고려해볼 점이 있다.

가족 중에 누가 좋은 길을 놔두고 힘든 길을 가려고 한다면 말리고 돌려세우는 것이 참다운 가족 사랑이다. 방관은 결코 잘하는 것이 아니다. 온가족이 손잡고 절에 다니고 같이 공부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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