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전비유설화─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관리자 | 2006.12.12 09:43 | 조회 1084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이런 문제를 주제로 제자와 문답을 주고 받았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물질(色)은 없는지요. 또는 감각(受)이나 표상(想)과 의지(行)와 의식(識) 중 하나라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는지요?” “수행자여.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각이나 표상과 의지나 의식 중 하나라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도 없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굳이 괴롭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바르게 알고 괴로움의 근본을 없애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좀 더 자세히 가르쳐 주려고 흙을 조금 집어서 손톱 위에 올려놓고 그에게 물었다. “이 흙이 얼마나 많은 양인가?” “그것은 넓은 대지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입니다.” “수행자여. 만일 요만큼이라도 물질이나 감각이나 의지나 현상이나 의식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범행을 닦는 사람은 그것을 알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손끝의 흙만큼도 항상 변하지 않는 존재가 없기때문에 수행자는 그것을 바르게 알고 범행을 닦아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씀한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거듭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변치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를 물었다. 수행자들은 부처님이 방금 가르친 대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을 나(我)요, 나의 것(我所)이요, 나의 본질(我體)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제자들은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비구들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수행자들이여.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 없다(無常)’고 관찰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수행들은 모든 존재(色受想行識)를 싫어하게 되고, 싫어하면 탐착하지 않게 되고, 탐착하지 않으면 해탈하게 된다. 해탈을 얻게 되면 ‘이제 더 이상 미혹의 삶을 되풀이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알게 된다.” 〈증일아함경〉 14권 고당품(高幢品) 제4경 무상을 관찰해야 존재를 혐오하고 탐착함이 없어져 해탈에 이르게 돼 모든 불교사상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것이 무상(無常)의 개념이다. 그 무상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경전이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인생과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과 정신의 복합체인 오온(五蘊:色受想行識) 중 어떤 것도 상주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부처님은 흙을 조금 주워서 손톱 위에 올려놓고 ‘이 세상에서 요만큼이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부연한다. 사실 지혜로운 사람이 관찰해보면 이 세상에서 손톱 위의 흙만큼도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불교는 이 고통을 극복하려고 존재하는 종교다. 이것은 불교의 모든 사상이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해석 위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생각을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 바로 〈금강경〉의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이 세상에 있는 일체의 존재는 /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 같다. / 또한 그림자요 이슬이요 번갯불과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리라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홍사성/불교신문에서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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