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부처님이야기─왕사성으로 가다(10)

관리자 | 2007.04.09 10:11 | 조회 1686
   왕사성으로 가다 출가하려는 비구들의 귀의 절차를 말씀하시고 부처님은 자신도 혼자서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 근처의 우루벨라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왕사성으로 가시다가 길 옆의 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실 때였다. 근처 마을의 젊은이들 30명이 아내와 동반하여 놀러 나왔다. 그때 아내가 없던 한 사나이가 음녀( 女)를 동반하였다가, 그 음녀한테 자기들의 재물을 도둑맞고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음녀를 찾아 헤매다가 숲속에 앉아 있는 부처님을 만나 여인의 행방을 물었다. 그런데 부처님은 왜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간의 사정을 아시게 된 부처님은 그들을 향하여 다시 물으셨다. “그대 젊은이들이여, 자기 자신을 찾는 것과 그 여자를 찾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여자를 찾는 것 보다는 자기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젊은이들 거기에 앉으라.”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그들은 모두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재물 등의 소유물을 찾아나서는 것 보다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참된 존재를 바르게 눈뜨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니, 즉 너 자신을 먼저 알라는 말씀이다. 마가다국의 왕사성에서는 가섭 삼형제가 가장 존경받는 종교가였다. 그들은 불을 섬기는 배화교도(자이나교)였다. 백성들은 물론 임금인 빈비사라왕까지도 가섭 삼형제를 깊이 신임하고 받들어 공양 올리고 있었다. 가섭 삼형제 가운데 맏형인 우루빈나 가섭을 교화한 것은 불교교단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러나 그의 교화는 많은 논쟁과 대결을 통해 이루어졌다. 율장에서는 이러한 사건을 설화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느 날 부처님은 우루빈나 가섭이 살고 있는 곳에 가서 하루 밤을 묵어 가자고 하였다. “가섭이여, 만약 그대에게 지장이 안된다면 당신의 제각(祭閣)에서라도 하룻밤을 자고 갈 수가 있겠오?” “저에게는 지장이 없습니다만 제각 안의 사나운 독용이 당신을 해칠까 걱정입니다.” “나의 염려는 마시고 빌려만 주시오. 용이라해도 나를 해치지는 못할 것이오.” “제각은 넓으니 쉬고자하면 뜻대로 하시오.” 부처님은 제각에 들어가 자리를 깔고 가부좌하여 곧 바로 삼매에 들어갔다. 이때 독룡이 나와서 부처님께 연기를 뿜으니 부처님도 독룡을 향하여 신통력으로 연기를 뿜었다. 이번에는 독룡이 불을 뿜었다. 부처님도 이에 대항하여 불을 뿜었다. 이것을 화광삼매(火光三昧)라고 한다. 불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밖에서 보게된 가섭과 그의 제자들은 저 사문이 불쌍하게도 해를 입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독룡을 해치지 않고 신통력으로 독룡의 몸을 작게하여 바루 안에 담아 가지고 이튿날 아침 제각안에서 나왔다. 그것을 보게된 우루빈나 가섭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저 사문 고타마는 정말로 큰 위신력을 가지고 있어 신통력이 자재하구나. 그러나 신통력으로 사나운 독룡을 굴복시켰다 하더라도 나와 같은 아라한은 아닐 것이다.’ 당시 마가다국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었던 우루빈나 가섭은 쉽사리 부처님께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 가섭의 마음을 타심통으로 알고 계시는 부처님은 그가 스스로 굴복하여 귀의할 때까지 여러 차례의 신통력을 보였다. 마침내 겉으로는 말하지 않고 있으나 속으로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감탄하고 있는 가섭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너는 항상 말하기를 사문 고타마가 비록 아라한과를 얻었지만 내가 얻은 아라한과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너를 보니 너는 아라한이 아니며, 또한 아라한으로서 도를 실천하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아라한이 될 수 있는 수행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러한 말을 듣게 된 우루빈나 가섭도 더 이상 교만할 수가 없어 부처님의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우루빈나 가섭에게 500명의 제가가 있음을 아시고 그들의 문제를 먼저 정리할 것을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이미 500명의 제자들이 너를 따라서 수행하고 있었으니, 그들에게 네가 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들은 자가들이 좋아하는 의사에 따라 수행하게 하라.” 우루빈나 가섭은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나는 이제 사문 고타마를 따라서 범행을 닦고자 한다. 너희들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뜻대로 하라." 우루빈나 가섭을 따르던 500명의 제자들은 다같이 말하였다. “우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저 사문에 대하여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직 스승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빈나 가섭을 비롯한 500명의 배화교도들은 머리를 깍고 제사에 사용되는 도구들을 네란자라강물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설법을 듣고 구족계를 받았다. 한편 강의 하류에서 30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생활하던 둘째 나제 가섭은 형과 그의 제자들이 버린 제사용구와 휴대품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형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되어 제자들을 거느리고 상류로 올라 왔고, 마지막 동생 가야 가섭도 이러한 소식을 듣고 20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큰형인 우루빈나 가섭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큰 형을 통하여 그간의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된 두 동생들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하니, 그들을 따르던 500명의 제자들도 모두 제자가 되어 비구가 되었다. 가섭 삼형제를 교화함으로 승가의 구성원이 1000명이 넘는 대집단이 되어 버렸다. 부처님은 이때 마가다국의 빈비사라왕을 교화하기 위하여 왕사성으로 가시다가 가야산에 오르셨다. 이때 1000명의 제자들을 향하여 그 유명한 설법을 하시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온 세상이 불타오르고 있다. 온 세상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눈이 불타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세상(色)이 불타고 있다. 눈의 분별이 타오르고 있다. 눈이 보아서 즐거운 것이나 괴로운 것이나 모두 불타오르고 있다. 무엇 때문에 불타오르고 있는가? 탐욕의 불, 분노의 불, 어리석음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생로병사의 근심 걱정 번민과 고통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이처럼 귀에서도, 코에서도, 혀에서도, 몸뚱이에서도, 나아가 마음에서도 불길이 훨훨 타오르고 있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교화하실 때 세가지의 방법을 썼다. 신통력으로 교화하는 것이요, 사색을 통하여 자신의 번뇌를 끊게 하는 것이며, 조직하고 체계화한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등이다. 가섭 삼형제의 귀의는 마가다국왕을 비롯하여 왕사성의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적인 사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가섭의 삼형제는 부처님보다도 나이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왕사성에서는 제일 존경받아 왔던 종교가들이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1000명이 넘는 제자들과 함께 왕사성 근처의 장림원에 머물게 되었다. 마가다국왕인 빈비사라도 이미 부처님에 대한 소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이 뵙고 싶어졌다. 성불하기 전에 부처님과 만나 서로 대화를 한일도 있어서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었다. 빈비사라왕은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고, 많은 대신들과 호위병을 거느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장림원으로 향하였다. 이 때 만이천 대의 수레에 팔만사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누어 차고 장림원으로 갔다고 전한다. 빈비사라왕은 장림원의 입구에 이르자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부처님께 나아갔다. 미소에 넘치는 얼굴과 위엄있는 모습에 왕은 환의심을 내어 부처님의 발아래 예배하고 앉았다. 따라온 성안의 사람들도 발아래 절하고 앉거나, 손을 들어 안부를 묻고 앉거나, 자기의 이름을 밝히고 앉거나, 부처님을 향해 합장을 하고 앉기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임금님을 따라 오기는 하였으나 우루빈나 가섭이 스승인지 사문 고타마가 스승인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많은 대중들이 이러한 의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신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일어나서 나를 위해 뒤에서 부채질을 하라.” 부처님의 말씀하시는 뜻을 알아들은 우루빈나 가섭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아래 예배하면서 말하였다. “저는 우루빈나 가섭으로서 세존은 저의 스승님이시고, 저는 제자입니다.” 라고 하면서 부처님 등 뒤로 가서 부채질을 해드렸다. 이런 광경을 보게된 많은 사람들은 이제까지 자기들이 우러러 받들었던 가섭의 형제들이 사문 고타마의 제자가 되어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의 근기에 맞추어 알기 쉽게 가르침을 설하시니 듣는 사람들 모두가 환희심을 내게 되었다. 그것은 인과업보에 관한 설법이었다. 남을 위하여 베풀고 살면서 선행을 쌓아야 한다는 보시와 보시에 의한 공덕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윤리적 실천 덕목으로서 계율과 그러한 공덕과 계행을 지키는 덕행으로 다음 생에는 천상에 태어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는 과보를 말함으로서 이론보다는 실천적인 종교 생활을 설하셨다. 이러한 설법을 듣고 그들은 임금을 선두로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불자가 되었다. 빈비사라왕은 불교를 신봉하는 왕으로 개종하였고, 부처님과 제자들을 성안으로 초청하여 편의를 제공하고 싶었다. '성에서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으며 출입하기에 편리하면서도 법답게 수행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세존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기 쉽고, 낮에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적어 혼잡하지 않고, 밤에는 조용하면서 모기나 해충 등이 많지 않은 곳' 을 선정하여 죽림정사를 세웠다. 이 죽림정사는 불교 최초의 사원이 되었고, 사원의 위치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부처님은 죽림정사를 헌납 받으시면서 게송으로 축원하셨다. “보시하는 사람은 탐욕심을 끊게 되고, 인욕하는 사람은 길이 분노를 떠나며, 선행을 쌓는 사람은 어리석음을 여의게 된다. 이 세 가지 갖추어 실천하면 빨리 열반에 이르게 되리. 가난하여 남들처럼 보시할 수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칭찬하고 기뻐하면 그 복은 보시하는 사람과 다를 것 없을 지어다.” - 계속 - * 용화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07 14:09)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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