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경전비유설화─일곱 종류의 불자들

관리자 | 2007.09.05 09:36 | 조회 1147
-엽의관음도- ***일곱 종류의 불자들***
    불자는 ‘삼악도’서 헤매지 말고 ‘거룩한 성자 삶’ 닮도록 노력 위선 교만 나태 등 버리고 낮은데서 높은 단계로 향상해야 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물에 빠진 사람의 비유(水喩人)’를 들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나는 지금 일곱 종류의 물에 빠진 사람의 비유를 들어 설명할 테니 잘 듣고 수행하는데 게으르지 말라. 첫째는 물밑에 빠져 있으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착하지 못한 법이 그 몸에 가득차서 몇 겁이 지나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물밑에 빠져 있으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둘째는 물에서 나왔다가 도로 빠지는 사람이다. 그는 믿음의 뿌리가 점점 엷어져서 비록 착한 법에 있지만 그것이 든든하지 못하다. 그래서 그는 몸과 입과 뜻으로 선행을 하다가도 뒤에 다시 악행을 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난다. 이런 사람을 물에서 나왔다가 도로 빠지는 사람이라고 한다. 셋째는 물 위로 나와서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는 믿음의 뿌리는 있으나 몸과 입과 뜻으로 행함에 있어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스스로 안주하나니 그는 나중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난다. 이런 사람을 물위로 나와서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넷째는 물에서 머리를 내밀고 머무는 사람이다. 그는 믿음과 정진으로 세 가지 결박을 끊고 다시는 물러나지 않고 반드시 구경에 이르러 위없는 도를 성취한다. 이런 사람을 물에서 머리를 내밀고 머무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섯째는 물을 건너려는 사람이다. 그는 믿음과 정진으로 항상 부끄러움을 가져 세 가지 결박을 끊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이 세상에 태어나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다. 이런 사람을 물을 건너려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섯째는 저쪽 언덕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는 믿음과 정진의 뿌리가 깊어서 욕심세계의 다섯 가지 결박을 끊고 아나함이 되어 거기서 열반에 들어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저쪽 언덕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일곱째는 이미 저쪽 언덕에 건너간 사람이다. 그는 믿음의 뿌리와 정진의 뿌리가 깊어서 부끄러워할 줄 알고, 번뇌가 다하여 현재에서 스스로 즐거워한다. 이미 나고 죽음이 다했으며할 일을 다 마쳐, 다시는 후생의 몸을 받지 않을 줄 알며, 남음이 없는 열반 (無餘依涅槃)의 세계에서 반열반한다. 이런 사람을 이미 저쪽 언덕에 건너간 사람이고 한다.” - 증일아함 33권 등법품(等法品) 제3경 --------------------------------------- 경전의 문면을 자세히 읽다보면 앞에 나오는 세 부류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를 헤매는 사람들이다. 뒤에 나오는 네 부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네 단계(預流 一來 不還 無學)의 성자들이다. 불자들로서는 당연히 삼악도에서 헤매지 말고 거룩한 성자들의 삶을 닮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우리는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향상하지 못하고 있다. 심한 경우는 날이 갈수록 높은 단계에서 낮은 단계로 곤두박질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멀리서 예를 구할 것도 없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요즘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어째서 이처럼 고약한 일이 생기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다음 서너 가지가 원인이 아닐까 싶다. 첫째는 위선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교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는 나태하기 때문일 것이다. 넷째는 우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째는 불교를 망치려고 작정한 외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을 교화하여 사람을 만들자면 자비하고 너그러운 부처님도 속깨나 끓이셔야 할 것 같다.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불교신문 명상음악/지혜의길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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