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행복을 누렸다.
부처님은 이 같은 아니룻다의 수행을 크게 찬탄하고
이를 계기로 제자들에게 수행자가 지녀야할
여덟 가지 생각을 조목조목 나누어 설법했다.
“도는 욕심이 없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욕심이 있는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욕심이 없는 상태가 되면
스스로 그렇게 된 줄 알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내가 욕심이 없다는 것을
애써 알리려 하지 않는다.
또한 도는 만족할 줄 아는데서 얻어지는 것이며
만족할 줄 모르는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만족할 줄 알아
옷은 다만 몸을 가리기 위해 입으며,
밥은 다만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다.
도는 멀리 떠나는데서 얻어지는 것이지
모임을 즐겨하거나 모임에 어울리는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멀리 떠나기를 행하되
욕심에서 떠나고 번뇌에서 떠남으로써 도를 이루고자 한다.
또한 도는 부지런히 닦는데서 얻어지는 것이지
게으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언제나 부지런히 악업을 끊고
모든 선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전일하고
견고한 뜻을 잃지 않도록 하며
모든 선을 위해 방편을 잃지 않는다.
"물질이란 아무리 채워도 부족
욕심을 버려야 진정한 행복"
도는 바른 생각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잘못된 생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육신은 깨끗한 것이 아니며(身念處),
고락을 생각하는 것은 괴로움이며(受念處),
마음은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늘 변하는 것이며(心念處),
만유에는 불변의 자아가 없다(法念處)는 사념처를 닦는다.
또한 도는 고요한 생각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어지러운 생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욕심을 떠나고,
선과 악의 법을 떠나서 제4선을 성취하고 거기에서 노닌다.
도는 지혜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어리석음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지혜를 닦아 흥망성쇠의 법을 관찰하고
분별하며 성스러운 지혜를 밝게 통달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또한 도는 침묵의 명상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이론을 희롱하거나 즐기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언제나 실없는 희론을 멀리하고
무여열반에 머물러 항상 즐거움과 기쁨에 머문다.”
-중아함 18권 74경 〈팔념경(八念經)〉-
불교는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물질이란 아무리 채워도 부족감만 더해진다.
그것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만 더해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주 무욕의 행복함에 대해 설법하곤 했다.
어느 경전에서는 ‘히말라야를 둔갑시켜
황금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배로 늘린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세상은 즐겁지 않다’는 말씀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출가자에게나 가능한 것이지 재가자에게는 불가능하다.
욕심이 없다면 세상을 살 수가 없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의 대답은 차라리 가난해지더라도
갈증을 없애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부처님 제자’라면
억지로라도 그분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다.
-홍사성/ 본지 주필-